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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2030년 12월 31일, 어느 집에서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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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2030년 12월 31일, 어느 집에서 벌어진 일

 

2030년 12월 31일

어머니의 병환은 날로 중해져 갔다.

이제는 정신조차 혼미한 어머니는

이따금씩 제정신이 들 때마다 내 집에서 죽고 싶다고 우겨

기어이 일주일 전 늙은 몸을 당신만큼이나 늙은 방에 뉘였다.

- 오빠 미쳤어? 아픈 엄말 어떻게 집에다 모실 생각을 해?

미국에 있는 여동생이 울며 펄펄 뛰는데도 불구하고

영식이 결국 어머니를 집으로 모신 것은

이 집이 어머니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 전역의 재건축이 멈춘 지 어언 20년.

지은 지 50년이 넘어 여기저기 배관이 터지고

수도에선 녹물이 나오는 20평짜리 작은 아파트는

그래도 '남의 집' 아닌 '내 집'에서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 삶의 자랑이자 보람이었다.

이제는 자식들도 모두 떠나 빈 둥지 같은 집.

그 집에서 어머니는 매일같이 병세가 나빠져

이제는 정말로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은 상태에 이르렀다.

"엄마, 영은이 곧 온대요.

비행기 표 끊었대요.

조금만 더 버텨서 영은이 보고 가세요. 예?"

눈을 꼭 감은 채 가는 숨만 힘겹게 이어갈 뿐

대답조차 없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홧김에 흐느껴 울다

영식은 잠시 한숨 돌리고자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오는데 현관 앞에

삼십 대쯤 되어 보이는 젊은 남녀가 바투 서 있다가

영식이 안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선다.

"누구시죠?"

수상쩍게 묻자 남녀는 얼른 얼버무리며 황급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상한 이들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영식은 아파트 밖으로 나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기록적 한파라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새하얀 연기가 얼어붙은 밤 공기 사이로 퍼져나갔다.

차라리 빨리 편안해지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데

한편으로는 정작 어머니가 돌아가신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어머니 없는 세상을 어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나이를 오십이나 먹고도 막막한 자신이 한편으로 우스웠다.

쓰디쓴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들어오는데

위층에서 숨죽여 나누는 말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여보 어떤 것 같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아까 아저씨 안에서 우는 소리 들었잖아."

"그러게 눈도 빨갛게 부었더라."

설마...

영식의 가슴에 싸늘한 것이 스쳐갔다.

밑에서 듣고 있는 것도 모르고

남녀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럼 할머니 벌써 돌아가신 거 아닐까?"

"돌아가셨으면 경찰이든 구급차든 왔겠지."

"미치겠네. 이제 세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그렇다.

저들은 어머니의 숨이 넘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영식이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올라가 눈앞에 나타나자

남녀가 동시에 저승사자 본 듯 놀란 얼굴을 했다.

"아무리 집이 중한들 사람이 먼저야!

그깟 집 때문에 사람이 숨 넘어가기를 빌고 있다니

그러고도 당신들이 사람이야?"

영식은 피를 토하듯 호령하였다.

젊은 사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차마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희 사정이...."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 대신, 여자가 눈물을 왈칵 쏟았다.

"저희 아이가 셋이에요.

겨울에 배에서 재우니 아이들이 감기를 달고 살아요.

막내는 그만 기관지염으로 번져서 얼마 전엔

그 어린 것이 중환자실에까지 입원을 했어요.

짧은 생각에 그만... 부디 용서해 주세요...."

영식은 가슴 속에서 들끓던 분노가 서서히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나이 올해 쉰.

그래도 그의 젊은 시절까지는

낡았든 좁아 터졌든 발 밑에 땅은 딛고 살았는데

요즘 신혼부부들은 한강에 작은 배 한 척 띄워 시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들도 그 중 하나인 것이다.

1가구 1주택을 강제하는 법이 생긴 지 어언 십 년.

대한민국에서 다주택자는 완전히 사라지고

모두가 1주택자가 되었으며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의 비율도 무려 90프로에 가까워졌다.

집값 역시 정부에서 법으로 강제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그지없이 안정적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웬만한 회사에서 오륙 년 정도 일해서 돈을 모으면

강남 20평대 아파트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는 수준이다.

오늘은 12월 31일.

대통령이 자못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TV에 나와

2030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우리 정부는 드디어 집권 15년 만에 1주택자 비율 100퍼센트를 달성하였으며 전 국민의 90프로가 자기 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때 천정부지로 치솟던 집값 역시 누구나 살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되었습니다.

이는 위대한 국민 여러분의 승리이자 대한민국의 승리입니다.]

전부 사실이지만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나머지 10프로의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돈이 있다고 집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모두가 집을 한 채 씩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한 채 씩만 갖고 있으니 전월세라는 것은 역사 속 이야기가 되었다.

즉 집이 필요한 사람은 반드시 사야 하는데

문제는 모두가 한 채씩만 가지고 있으니 집을 팔 사람이 없다.

건설사 역시 정부가 집값을 강제로 정해 놓았으니

이익이 나지 않아 더 이상 집을 짓지 않는다.

그러니 집이 극단적으로 부족해졌다.

돈이 있어도 집을 살 수가 없으니

한강변에 작은 배를 띄워서 사는 사람이 늘어났고

여기저기 공원마다 텐트촌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배나 텐트 신세를 면하려면 집을 사야 하는데

누구든 집을 사거나 이사를 하려면 미리 국토부에 신청을 하고

자기가 신청한 지역의 집이 빈집으로 나올 때까지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그 집이 낡아빠졌든가 너무 좁다든가 하는 것은

고려 대상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제는 한강변에 배 띄울 자리도 남지 않았고

공원마다 텐트로 빼곡히 들어찬 판에

찬 밥 더운 밥 가릴 계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편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결혼하면서 00동에 집을 신청했었습니다.

저희 큰애가 이제 내년이면 학교에 갑니다.

이제 저희 순서가 바로 다음인데, 여태 빈 집이 나오지 않아서.... "

그제야 영식은 이들이 처한 사정을 완전히 이해하였다.

갓 결혼한 부부에게는 국가에서

'신혼부부 특별신청'이란 명목으로

다른 이들보다 앞선 순위로 신청할 수 있게 해 준다.

문제는 이런 신혼부부들도 너무 많다 보니

유리한 순위를 받아도 차례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상황은 매년 심각해져서

어느덧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

법적으로 신혼부부 자격을 상실하게 될 때까지도

이들의 차례가 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12월 31일.

밤 열두 시가 지나면 아이는 여덟 살, 학교에 갈 나이가 된다.

신혼부부 특별신청으로도 꼬박 7년을 기다려 겨우 순서가 올까말까인데

다시 일반신청을 하게 된다면 70년을 기다린들 이들의 순서가 올까.

어떻게든 오늘 안에 빈집이 나오지 않으면

이들이 그 배에서 벗어날 희망은 영영 사라진다.

그래서 이들은 중환자가 있다는 집 앞에서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혹 오늘 안에 돌아가시면 잽싸게 국토부에 신고할 셈이었으리라.

이 얼어죽을 것 같은 날씨에......

부부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그들의 빨갛게 얼어붙은 손을 보니 영식은 절로 어머니 생각이 났다.

영식이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혼잣몸으로 영식이 남매를 키워냈다.

연약한 몸으로 1톤짜리 파란 작은 용달차를 몰고

어머니는 이 거리 저 거리를 누비며 과일도 팔고 건어물도 팔았다.

겨울에 밤늦게까지 장사 하고 나서

옛날통닭 한 마리 튀겨 갖고 들어오시던 그때

치킨 봉지를 건네던 어머니 손이 딱 저랬다.

어찌 다르겠는가

자식들 먹이려 밤늦게까지 거리에서 장사했던 어머니 마음과

자식을 따뜻한 방에서 재우고 싶었던 이들의 마음이....

"아이들은 어쩌고 있습니까?"

영식의 차분한 목소리에 젊은 부부가 흠칫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예?"

"아이들끼리 놔두고 이렇게 부모가 나와 있어도 되느냔 말이오."

속에서 울컥 치미는 것을 꿀꺽 삼키며 그는 퉁명스레 말했다.

"오늘 안으로 집이 나올 것 같으니 걱정 말고 어서 들어들 가 봐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젊은 부부는 눈물을 흘리며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그들의 배로 총총히 돌아갔다.

영식은 또다시 어머니 곁을 하염없이 지키기 시작했다.

미국 사는 딸을 기다리시는 걸까.

금방이라도 끊길 것 같은 어머니의 숨은

자정이 가깝도록 멎지 않았다.

열두 시 오 분 전.

영식은 마음을 결정하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저희 어머니가 방금 열한 시 오십 분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집을 매물로 내놓아 주세요."

한 해의 마지막 날에도 이어지는 야간 근무가 피곤해서일까.

24시간 돌아가는 국토부 콜센터 상담원의 목소리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에도 어디까지나 딱딱하기만 했다.

[임종 시간은 확실한가요?

가끔 허위신고가 있어서요.]

가슴이 뜨끔하였으나 영식은 태연히 대답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희 어머니십니다.

제가 왜 그런 거 가지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아침에 의사가 사망 진단하러 올 겁니다."

[그럼 주소 말씀해 주세요.

오늘 날짜로 매물 등록해 놓겠습니다.]

새벽까지도 어머니의 가느다란 숨결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 이어졌다.

영식의 고민이 깊어졌다.

혹 아침이 되어 의사가 왔을 때까지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면

그 부부와 아이들은 집을 잃는 것은 물론

영식 역시 허위신고한 죄로 몇 년은 족히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

부동산 감시기구인 부동산 감독원은

검찰개혁 이후의 검찰보다도 힘이 있는 기관이다.

부동산시장 교란죄는 오늘날 웬만한 우발적 살인보다 중한 죄였다.

"어머니."

생각다못해 영식은 어머니의 마른가지같은 손을 붙잡고 가만가만 속삭였다.

"이 집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대요.

어머니 가시면 그 아이들이 이 집에서 자라게 될 거예요.

저랑 영은이가 이 집에서 행복하게 자란 것처럼요."

마지막 말은 입밖으로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 아들이라 정말 행복했어요.

그러니 이제 마음 놓고 편히 가세요."

목이 메어 겨우겨우 말을 맺은 그 순간

어머니의 주름진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졌다.

"어머니?"

놀라서 다시 바라보자 어머니는 미소를 띤 채

더는 숨을 쉬지 않으셨다.

살아생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한 것도 모자라

마지막 숨까지도 자식을 위해

생판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다 주고 가신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은

영식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어머니, 어머니....."

"1가구 1주택만 소유하라"…진성준 주거기본법 발의

(서울=연합뉴스) 강민경 기자 =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현행 주거정책의 기본원칙에 '1가구 1주택 보유·거주'를 명시하자는 내용의 주거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22일 밝혔다. 현행법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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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단편소설] 2030년 12월 31일, 어느 집에서 벌어진 일 (부동산 스터디') | 작성자 삼호어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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