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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기사

묘한 설레임 느껴지는 고려대 고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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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설레임 느껴지는 고려대 고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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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생각하곤 했지만 당신은 잘생긴 편은 아니다

디스 하는 게 아니고, 신기해서 자꾸 말하게 된다.

내가 줄곧 찬양하던 각종 연예인의 얼굴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흔한 외모인 게.

내 글이 조금 고루하고 너저분할 수도 있지만, 잘생기지 않은 당신에 대해서 적어보려 한다.

유난히 덥던 이번 여름,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평소에 내가 싫어하던 브랜드의 카페인지라 알바가기가 많이 귀찮았다.

그래도 또 구하기는 더 귀찮아서 그냥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날도 귀찮음을 무릅쓰고 출근해서 카운터에 앉아 웹툰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걸어들어왔다.

‘내 또래로 보이는데 부지런하네 – 아르바이트만 아니었다면, 9시는 나에게 한밤중이었을 것이다-‘ 하는 생각에 흘깃흘깃 쳐다봤다.

눌러쓴 베이지색 모자에 평범한 반팔, 평범한 반바지, 수더분한 외모.

그리고 꽤 좋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하며 고개를 꾸벅.

‘주문 도와드릴까요?’

‘네. 아이스 카페모카요.’

당신은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모자와 옷 색깔 때문에 커다란 리트리버 같았다.

나온 음료를 받아들고는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리고 꾸벅하더니 총총 사라졌다.

그날의 당신은 그냥 수많은, 평범한 손님 중 한 명이었다.

그다음 날도 당신은 비슷한 시간에 왔다.

문을 당기려고 힘을 줬다가 ‘미시오’를 봤는지, 어정쩡하게 미는 바람에 종소리가 요란했다.

죄송합니ㄷ… 당신은 종소리에 놀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소심하네’ 라고 생각했다. 소심한 건 딱 질색이다.

당신은 어제와 같은 음료를 시켜놓고 기다렸다

동아리 같은 걸 하나보다,라고 스치듯 생각하고 커피를 만들었다.

나온 커피를 양손으로 받아든 당신은 나를 보고 어제처럼 꾸벅 인사하고 나갔다.

뭔가 내가 형식적으로 하는 인사가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 냄새나는 인사였다.

그다음 날도 왔다.

이번엔 문을 제대로 밀고 들어왔고,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묘한 뿌듯함이 보여 속으로 웃었다 잘생기진 않았지만, 표정이 풍부하다고 생각했다.

그전의 날들과 같은 음료를 주문했고, 같은 자리에서 얌전히 기다리다가 같은 방향으로 사라졌다.

학교나 집이 그곳인가 했는데, 몇 시간 뒤 우연히 당신이 아침에 사라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다.

내일은 어디로 가나 봐야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그리고 그런 날 놀리듯이 당신은 며칠 보이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은데 꽤 궁금했다.

손님도 몇 없었고, 뭔가 당신에 대해 추리하는 게 좀 재밌을 성싶었는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당신이 들어왔다.

머리를 했는지 하늘색 모자 사이로 삐친 머리카락들이 구불거렸다.

못내 반가웠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반가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이 반가움은 추리를 계속할 수 있다는 반가움이야!’라고 생각했다.

음료를 기다리며 당신은 전화를 했다.

‘응, 예 그렇습니다, 며칠 뒤에 내려감다, 아 잘 챙겨 먹고 있져,

아이고 걱정마시져, 응 영화 보려고 나왔어, 아니 있어 걱정 마,

어제? 어제 조금만 마셨어 진짜로, 아이 믿으시죠, 응, 응 이따 또 하겠슴다. 예 쉬십셔.’

아마 부모님 같았는데, 말투가 친근해서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말 사이사이 낮게 웃을 때의 웃음소리가, 어… 꽤, 매력 있었다.

그리고 역시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너스레를 떨 때 나오는 표정은 묘하게 귀여웠다.

나도 모르게 자꾸 찾게 되는 당신의 매력을 인정하는 게 민망해서 ‘영화를 보는 거구나,

커피는 영화 보면서 마시나보네’하는 생각들을, 그리고 당신의 웃음소리를 컵 속에 넣어버렸다.

평소처럼 음료를 받은 당신은 인사를 하다 말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캐리어가 필요 없다고 말한 당신은 카페 밖에 나가 방금 받은 커피를 목에 털어 넣고 돌아왔다.

되게 멋쩍어하면서 다음 커피를 기다리는 모습이 좀 웃겼다.

혹시 술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초코를 조금 더 넣었다.

이 정도 호의는 누구나 베푸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그리고 조금 더 친절하게 인사했다.

형식적으로 들리지 않게, 톤도 부드럽게, 멘트도 다르게.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어, 아, 네, 감사합니다.’ 꾸벅꾸벅

받은 인사가 황송하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나가는 당신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냥 봤다 묘하게 영화관 쪽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이 아쉬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두세 시간 후 당신은 돌아왔다 책을 들고.

같은 커피를 시켜, 조금 안쪽 자리에서 몇 시간쯤 책을 읽었다

당신이 책을 읽는 그 몇 시간 동안, 난 점점 많은 게 궁금해졌다.

무얼 더 주문해 먹지도 않는데, 뭘 먹고 들어온 게 아니면 커피 세 잔이 먹은 것의 전부일 텐데, 배는 안고픈가 궁금했다.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봤는지 묻고 싶었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정말 웃기게도 당신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내가 좋아할 만큼 잘생기지 않았는데,

난 당신을 고작 아르바이트생으로서 본 게 전부인데,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어이가 없었고, 쓸데없이 등판한 개똥같은 자존심 때문에 그 뒤로도 꽤 많은 시간을 당신에 대해 궁금해하기만 하며 보냈다.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는

‘내가 말 건다고? 내가 왜? 아니 솔직히 나 정도면 말 걸고 싶은 여자 아닌가?’

 

 

라는 개똥같은 생각과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다.

진짜 개똥에 대기도 미안한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대신 궁금증을 핑계삼았다.

이것저것 궁금해서 묻지 않고는 못 배기겠노라고,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그리고 얄궂게도 당신은 내가 행동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 내가 환상을 봤다는 듯이 당신은 발길을 뚝 끊었다.

개강이 다가올 즈음, 나는 알바를 그만두었고 대신 그 주변을 맴돌았다.

그 카페에 죽치기도 하고, 그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의 얼굴을 일일이 훔쳐 보기도 했다.

집이 근처일 것 같아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몇 시간씩 걷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수없이 짜증이 났고 그래서 ‘아 더럽게 비싼 인연인가 보네.’ 라고 털어내려고도 해보았다.

근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연애를 한 것도 아닌데 서글펐고 화가 났다.

한 번 만나보기라도 했으면 그때 느낀 단점을 계속 상기하면서 밀어낼 텐데.

그것도 안되는 상황이고, ‘당신은 신 포도야 다독이기엔 너무 많은 게 궁금했다.

미친.

만나본 것도 아닌데 자꾸 궁금증을 빙자한 내 마음만 부풀었다.

잘생기지 않은 그 얼굴을 계속 까내리려고 해도, 어느샌가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매력 있게.

하, 당신이 다시 태연하게 내 앞에 나타났으면 좋겠다.

이젠 인정하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까.

인정한다 당신이 보고 싶다 매력 있다.

내 기억 속에서 조금씩 각색까지 이루어져서, 지금 나에게 당신은 더럽게 매력 터진다.

지금 오면 내가 마음 죄다 꺼내줄 것 같다.

태연하게 와서 카페모카 달라고 해라.

백 잔, 천 잔도 사줄 테니 같이 마시자.

난 요즘도 그 카페에서 내 입에도 안 맞는 카페모카를 마신다.

언제까지 이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잠겨죽기 전에 나에게 밀려왔으면 좋겠다.

2

저도 길게 적고 싶은데, 글재주가 없어 그러지 못 해서 미안해요.

한동안 SNS를 끊고 살았었어요. 근데 며칠 전에 동생이 이거 너 아니냐,라고 웃으면서 뭘 보여주더라고요.

긴 글이었고, 재밌는 글이라고 생각했고, 뭔가 익숙했어요.

잘생기진 않은 외모, 하늘색 모자, 꾸벅, 카페모카. 어쩌면 김칫국일지도 몰라요.

옆에서 호들갑 떠니까 저도 모르게 이것저것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이는. 그래서 사실 엄청 망설였어요.

민망한 일이 생길까 봐.

근데 제가 자주 다니던, 기억하는 그 카페에 계셨던 분이 적은 글일까 봐, 민망함을 무릅쓰고 제보 보내요.

제보가 처음이라 약관…?같이 긴 부분들을 읽어봤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을 찾는 듯한 뉘앙스는 안되는 것 같더라구요.

 

 

그렇다고 실명을 밝히기엔 (제가 생각하는 분과 맞는 분이든 아니든) 제가 너무 민망할 것 같구요.

그래서 익명으로나마 짧은 답장을 보내고 싶어요.

익숙지 않아서 규칙에 위배되는 부분이 있다면 올라가지 않겠지만, 일단 적어 보내봐요.

저는 그 브랜드의 카페를 좋아해요. 친숙한 느낌이거든요!

커피를 잘 몰라서 달달한 것만 골라서 마셔요.

그러다가 정착한 게 카페모카예요.

초코 많이 넣어주신 거 정말 감사했습니다.

실제로 속이 너무 쓰려서 두 잔 마신 거였어요.

제가 거의 첫 손님으로 찾아가는 느낌이라, 그냥 혹시나 제가 귀찮게 하는 부분이 있을까 봐 조심스러웠어요.

실제로 조금 피곤해 보이시기도 했구요.

영화는 그냥 아무거나 전부 봤어요.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거든요.

읽던 책은 ’13계단’이라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이에요.

근처 중고매장에서 샀어요. 그리고 걱정…?해주신 대로 밥을 잘 안 먹었어요 그때는.

귀찮아서 그냥 아침에 커피 한 잔, 점심에 커피 두 잔. 보신 대로 잘생기진 않았고, 약간 소심한 것 같네요.

그래서 친절한 인사에 제대로 대꾸하지 못했고, 조금 큰 종소리에도 죄송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오늘 밤 비행기를 타요.

유럽으로 한 달이 조금 안되게 여행을 가거든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군대까지 너무 쉬지 않고 달린 것 같아서 여유를 가져보고 싶었어요.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가네요.

될 사람은 된다더니, 전 안 될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 사실 서글서글한 눈웃음이, 커피를 건넬 때 조금씩 스치던 손이, 씩씩하면서 상냥한 목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근데 보시다시피 제가 적극적이지 못한 탓에.

그리고 조금 더 사실은 ‘어떻게 나 같은 애가 저런 분을’이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더 자주 갈걸. 이 답장을 쓰는 데도 입술 여러 번 깨물었어요.

민망하고 쑥스럽고 미안해서. 그리고 고마워요. 좋게 봐주셔서.

이다음에 적을 말은 지울까 말까를 정말 한참을 고민했는데, 이왕 쓴 거 그냥 적어서 보낼게요.

10월 마지막 주에, 저는 내내 그 카페에서 있을 생각이에요.

운이 좋다면 이 글을 보실 테고, 조금 더 운이 따라준다면 아직 제가 밀려갈 수 있겠죠.

카페모카 말고, 좋아하시는 커피 사드리고 싶어요.

여름의 끝자락에서 절 기다리셨듯이, 이번에는 제가 기다릴게요.

겨울의 초입새에서.

3

낮은 아직 여름 여름 거리는데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것을 보면, 계절끼리 땅따먹기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괜히 웃곤 한다.

아무래도 겨울이 이기고 있는지, 하늘은 누구 말마따나 겨울의 초입새를 향하고 있다, 초입새!

 

 

그날도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술을 마실까 말까 망설이며 카카오톡 목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술이라는 게, 당기는 날일수록 잘 넘어가는 날일수록 위험하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막걸리 마실 사람?’ 이라고 올라온 단체 채팅방의 알림을 애써 흘렸다.

그리고 이어폰을 꺼내며, 그대로 버스정류장을 향해 흐늘흐늘 걸었다.

‘나 항상 그대를’
‘나만 안되는 연애’
‘내가 너에게 가든 네가 나에게 오든’

얼씨구? 별생각 없이 누른 쬐깐한 재생 버튼이 별생각 다 들게 한다 싶어서 팩, 하고 코로 웃었다.

노래는 꺼버렸고 이어폰은 뽑아버렸다.

잔잔하게 숨이 막힐 때, 계속해서 맴도는 고민들이 서서히 제 몸을 거칠게 휘두를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즐겨읽던 대나무숲에 글을 올렸다.

거의 혼을 내놓고 쓴 글이었다.

무의미한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 내 안에 울분 비슷하게 똬리를 튼 탓에 너무 갑갑했었다.

애꿎은 키보드를 두들겨서 쏟아낸 마음을 내 눈으로 확인하자, 참을 수 없게 부끄러워서 페이스북 출입을 자제하고자 다짐했다.

다들 하는 ‘금주 다짐’ 같은 거.

‘결국 다시들 마시잖아?’ 하면서 간만에 들어간 SNS는 역시 즐거웠고 한참 밀린 내용들을 신나서 죽죽 훑었다.

흐르던 엄지가 멈춘 곳은 친구가 좋아요를 누른 친구의 친구가 공유한 대나무숲 글.

-저도 길게 적고 싶은데, 글 재주가 없어 그러지 못 해서 미안해요.

계속 읽기로 글을 늘리고 무심히 읽었다.

한 번 다 읽고 쿵쿵거리는 눈을 다독이며 글을 다시 살폈다.

맞지 않는 조각을 우겨넣는 일은 하기 싫어서.

-하늘색 모자는 많지, 그래 카페모카는 널렸지, 김칫국 보글보글이라니 세상에, 13계단은 추리소설인가?, 밥 대신 커피라니 속은 괜찮은 건가.

모든 글자가 당신이었다가, 아니었다가 다시 당신의 발자욱이었다가 이내 꼭 들어맞는 조각들로 수렴했다. 아득하게.

한동안 어디로 걷는지 모르고 걷다 멈추고, 사람 피해 섰다가 다시 걸으며 글을 읽었다.

나는 관객이자 독자였고, 주위로 포실하게 내려앉은 가을밤의 주인공이었다. 둥실.

당신의 글은 유명한 글이었다.

좋아요도 많았고, 내 글과 엮어 소설 같다는 댓글도 많았다.

내가 창피하다고 생각한 내 글을 너무 많은 사람이 읽어버렸다는 생각이 설핏 들어서 숨고 싶었지만,

덕분에 답장을 받아볼 수 있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도 입술을 여러 번 깨물 수밖에 없었다.

비실비실 얼굴 밖으로 흐르려는 웃음을 멈추려고. 그리고 약간 후회했다.

조금 더 예쁘게 쓸 걸 그랬나, 이거 나인 거 너무 티 나나, 조금 감추고 바꿀 걸 그랬나?

그날 나는 후회와 부끄러움과 놀라움, 그리고 자꾸 일탈하는 얼굴 근육을 부여잡고 믿기지 않는 글을 몇 번이나 읽으며 거듭 확인해봤다.

확인이 확신이 된 지금에야 긴 글을 남긴다.

 

 

유럽에 있다는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나무숲을 통해 편지 형식을 빌린다는 사실을 불쾌해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자의 경우는 개의치 않는다. 당신이 기다릴 그 카페에 나는 몇 시간이고 전부터 기다릴 생각이니까,

그놈의 잘생기지 않은 얼굴에 대고 직접 읽어주고 말해줄 생각이니까.

후자의 경우라면, 거듭 고객을 숙일 따름이다.

잠깐 오기 부리다가, 팔자에 없는 상사로 몸져눕기 직전까지 갔던 이 멍청한 영혼을 어여삐 봐주십사 간절히 부탁드릴뿐이다……

인연이든 운명이든 행운이든 행복이든, 이걸 뭐라 부르든 간에 내가 안은 이 감정을 여러분은 더 크게 받으시길 바라겠다! 꼭!

그날 나는 거진 한 시간을 거리에 선 채로 위에 적은 행동들을 반복했다.

그리고 막걸리 집으로 향했다.

오롯이 이 감동을 곱씹기엔 내가 너무 하이퍼 했다.

먼저 마시고 있던 친구들과 인사를 한 건지 무슨 얘기를 한 건지 잘 모르겠다.

자리에 앉았으되, 나는 글을 곱씹고 자리에 없는 당신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따라 유난히 쓰게 느껴지는 꿀 막걸리가 어쩌면 당신의 달달한 글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먼저 마시던 친구들만큼이나 얼굴을 붉혔다.

고백하건대, 이 글은 처음 당신의 글을 읽은 순간부터 들쭉날쭉 적은 글들이다.

몇 번을 쓰고 지우고 고치고 덧붙였는지 모르겠다.

나와 당신 글에 대한 칭찬, 그리고 당신이 이 글을 읽었다는 생각에 ‘조금 예쁘게 써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력하니까 어색하고 오그라들었다.

그냥 막 쓰고 붙이고 그랬다. 아무렴 어떠냐 싶다. 꾸

미지 않은 내 글이 날 당신에게 데려다주고 있는데!

아, 하나 더 고백하자면 당신 글에 달린 댓글들에 묘하게 경쟁심이 일어서 나조차도 당황했다.

사실 나도 당신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옆에도 없으니 그런가 싶다.

그러니까 빨리 왔으면 하지만, 보채지 않겠다.

이미 당신의 운이 좋은 덕에 글이 나에게 닿았기 때문에.

그리고 아마 당신의 말마따나, 그 운이 조금 더 좋을 것 같기 때문에.

이제는 카페모카가 맛있으니까, 카테고리는 먹거리로 할래요!

4

소설을 읽다 보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끝나려나 싶은 소설들이 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길 즈음에는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 있고,

황당함이나 불쾌함이 짙게 깔리는 소설도 있다.

깊은 여운이 어깨를 쓸어내리는 바람에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게 하는 소설도 있을 것이고,

파문 하나 없이 고요한 느낌을 주는 소설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차마 책장을 넘기지 못하겠는, 그런 아쉬움이나 슬픔이 남는 결말을 좋아한다.

모든 게 생각대로 완벽하게 흐르고 진행되면, 어쩐지 행복이 쉽게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데, 고생할수록 그 낙은 더 달지 않겠나. 뭐,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좁은 비행기 좌석 정면에 ’00:20’ 이라는 글자가 깜박거려요.

20분이면 한국에 도착한다고 말해주는 거겠죠.

시간이 빨라요.

덮어놓고 저지른 일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

사실 많이 떨려요.

기분 좋은 떨림이 아니라, 내가 당신이 생각하고 바라는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내쳐질까 봐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손톱을 뜯고 다리를 떨었어요.

고쳤다고 생각했던 버릇이 툭툭 쏟아지는 것을 보니 지금 많이 조급하긴 한가 봐요.

뜯은 손톱이 흉해서 당신을 만날 때는 손을 아래로 내리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즈음, 저는 한국에 도착했어요.

눈앞의 소설이 어떤 감정을 남길지 또는 그 감정이 쉬이 날아갈 것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작가가 아닌 이상에야-, 일단 끝까지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지루하거나 (이놈의 클리셰),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왜 이리 들쭉날쭉이야),

주인공이 답답해도 (어휴 엄청 물러 터졌네), 일단은 참아야 한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독자는 일면 을의 입장인 것 같기도 하다.

간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었어요.

주변에서 소매치기니 한국인 차별이니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많이 해주셔서 소심한 제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다녔거든요.

비행기에서 잠을 설친 탓에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정신없이 잤어요.

그리고 여독인지, 된통 몸살이 들었어요.

마디마디가 너무 아려서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팠어요.

그래서 그날은 그냥 도착하자마자 짐도 못 풀고 누워버렸어요.

정말 한국에 온 건지, 누워있는 침대가 호스텔의 침대는 아닌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꿈결 따라 정신없이 걸었어요.

서울에서 당신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번엔 내가 기다리기로 했는데, 하늘이 쌀쌀한 걸 보니 지금이 내가 말한 그 겨울의 초입새가 맞는데.

서럽게도 몸이 따라주질 않았어요.

나의 경우에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어려서부터 이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했지만 안타깝게도 영문판을 척척 읽어낼 능력은 없었다.

(물론 지금도 없다. 주륵)

그래서 매번 영문판이 발간되더라도 번역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기다림은 5권, 불사조 기사단인데, 혹시나 스포일러일까 봐 조심스럽지만,

등장인물 한 명이 베일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있다.

책이 한 권씩 번역되어 들어온 터라 결정적인 장면에서 한껏 감정이입해서 울다가도 책장을 다 넘기면 무작정 몇 주,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차디찬 현실로 내동댕이 쳐지곤 했던 것이다.

얼마나 애가 탔는지 글로 설명해도 한참 모자랄 것이다.

부모님이 아무리 ‘어쩔 수 없으니까 잊고 지내다가 나오면 재밌게 읽자.’ 라고 다독여도,

그리고 나조차도 그 말이 지극히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서툰 검색으로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인터넷 서점 페이지를 들락날락 거리는 일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큼 기다림은 힘들고, 진한 것이었다.

꼬박 하루를 자고, 거진 이틀을 앓은 후에야 조금 나아졌어요.

시차 적응에 아직도 뎅-뎅 거리며 울리는 머리를 잡고, 서울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족들이 말렸어요.

무슨 약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아파 보이니까 하루만 더 있다 가라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다시 앉았어요.

하루 더 기다리게 한다는 생각에 미안했지만, 거울을 보니 이 꼴로 마주하는 것도 미안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문득 당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꿈처럼 그렇게 지나가셨을 수도 있겠다고.

당신 같은 분이 나를 기다릴 리가 없다고.

다시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당신의 글을 읽고 싶어졌어요.

이런 말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냥, 읽으면 실감이 날 것 같았어요.

자꾸 소심하게 굴려는 내가 좀 힘을 내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서 내 답장에 대한 당신의 다른 답장을 발견했어요.

<해리포터> 기다리던 그때의 꼬맹이보다 지금의 나는 키도 인내심도 훨씬 자랐을 진 데 기다림에 몸부림치는 것은 여전하다.

아니 어쩌면 더하다.

카페에 구비되어있는 냅킨을 잘게 찢고 -아 물론 잔해는 내가 치웠다.

나도 한때 이곳에서 일했었으니까- 읽지도 않을 책을 들추며 출입문을 흘깃거렸다. ‘괜히 챙겨왔나.’ 라는 생각을 하며 멍하니 책을 바라보다 보니, 문득 내 상황이 옛날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미치겠어도 다음 권이 발간되지 않으면 이미 외울 정도인 전의 내용들을 곱씹으며 기다려야 하는 것이고,

상대방이 감감무소식이면 마찬가지로 홀로 애태우며 그가 남긴 말들을 찢은 냅킨조각마냥 주워섬기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

잘 때가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어요.

다행히도 아직 늦은 시각이 아니었고, 도착하면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당신에게 가는 내내 나에게 온 그 두 번째 답장을 읽고 또 읽었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자려고 했던, 그리고 잠시나마 당신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제 자신이 너무 창피해서 몸 둘 곳을 정하지 못하고 허둥거렸어요.

잇새로 자꾸 중얼거렸어요. 이불 찬다고들 하잖아요.

창피한 기억, ‘왜 그랬는지’하는 기억을 떠올리면 반사적으로 말을 내뱉거나 행동하는. 그 카페로 가는 모든 걸음마다 후회하고 미안해하면서 자책했어요.

‘내가 이렇지. 오자마자 확인했어야 하는데. 괜히 애매하게 말했나 봐.

날짜를 정했으면 안 기다리셨을 텐데. 날도 추운데 괜히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셨겠네. 뭐라고 하지. 잤다고 해야 하나.

아팠다고 해야 하는 건가. 기회를 받으면 뭐 해. 일을 그르치려니까 이렇게도 되는구나.

 

 

바보처럼. 만약에 안 나오셨으면 어쩌지. 아니 사실 그래도 할 말 없지. 하 뭐가 이렇지. 서럽다. 미안해서 미치겠다.

나오셨으면 뭐라고 해야 하지. 인사를 해야 하나. 사과가 먼저겠지. 사과를 한다면……’

후회와 미안한 따위를 커다랗게 굴리며 걸으니, 어느새 카페 앞이었어요.

미시오인지 당기시오인지는 확인할 겨를도 없었고, 그건 저에게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몇 달 전에는 당신이 서있던 자리에 낯선 사람이 서있었어요.

자꾸 떨리는 손을 맞잡다가, 보기 흉한 손톱이 보여 얼른 아래로 그러쥐었어요.

낯선 사람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눈으로는 열심히 당신을 찾았어요.

그때와 다를 것 없는 구조에, 사람도 얼마 없었는데도 자꾸 시선은 방황했어요. 얼레벌레 둘러보고, 다시 둘러보고 나서야 당신이 없다고 생각했고, 조금씩 진정할 수 있었어요.

지나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문득, ‘덥다’ 라고 느꼈고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냅킨 찢기도, 책 들춰보는 것도, 사람 구경도 -애초에 사람도 많이 않았다.- 질릴 즈음,

딱 한 시간만 더 있다 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이런 생각을 이른 오후부터 하긴 했지만 왠지 내가 나가면 서로 엇갈릴 것 같은 기분에 꾸물거렸다.

며칠 째인지도 사실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는 오겠지. 최소한 11월 전에는.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은 개뿔, 그냥 소설이든 뭐든 기다림, 헤어짐 같은 거 없이 해피엔딩이 최고야.’ 라고 생각하며 입을 비쭉거렸다.

거의 다 마신 카페모카 컵을 치우기 위해 일어섰다.

냅킨 조각도 그러모았다.

한 손에는 카페모카 잔을, 다른 한 손에는 냅킨 조각을 들고 쓰레기통을 향해 걸었다. 한 잔만 더 마실까?

‘차라리 잘 된 거지. 내가 기다리는 편이 나아. 그리고 그게 맞고. 그래, 이왕 왔으니까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다가 늦게 영화나 한 편 보고 들어가자.’

따위의 생각을 하며 지갑을 꺼내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 손에는 컵을, 다른 한 손에는 휴지조각을 들고 있는 당신과 눈이 마주쳤어요.

‘드디어 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신은 그대로였다.

추운 날씨에 약간 두꺼운 옷을 입어서 인지 커다란 강아지 같다는 인상이 더욱 짙어졌다.

‘안녕, 리트리버.’ 라고 부르며 놀려주고 싶었다.

머리가 많이 자랐다.

구불구불. 나는 분명히 내 얼굴에게 ‘침착함’을 주문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얼굴 근육은 멋대로 당신을 반기기 시작했다.

많이 기다린 걸 알아달라고 시위하듯이 입꼬리, 콧등, 광대, 눈꼬리, 보조개 어디 하나 태만한 곳 없이 아주 열렬히,

당신을 반기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따위의 생각조차도 못했어요.

크게 한 대 맞은 것처럼 눈만 크게 떴어요.

당신은 태연해 보였어요.

묘하게 빙글빙글 웃는 것 같기도 했어요.

 

 

몇 달 만에 보는 건데, 당신은 여전히 매력적이었어요.

묶은 모습만 봤던 머리가 풀려있었어요.

보조개가 있는지는 몰랐어요. 생각보다 키가 작았어요.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고 계속 입을 열었는데, 결국 말은 못 꺼내고 속절없이 닫았어요.

마주하면 처음 꺼낼 말들, 혼자 연습 되게 많이 했는데. 연습한 말들이 아니라고 해도, 할 말이 많았는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내 잘못이라고, 많이 기다렸느냐고,
많이 보고 싶었다고.

-저기
-네? 네?
-커피 마실래요?
-아…
-카페모카 맛있는데.

내 말을 듣고, 그제야 당신은 웃기 시작했다.

본 적 없는 환한 웃음. 그래서 나도 그냥 웃었다. 침착함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당신의 말을 듣고, 웃음을 보고 깨달았어요.

제가 얼마나 바보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를.

자꾸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계산대에 섰어요.

주문하시겠어요? 라는 물음에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당신을 쳐다봤어요.

그러자 당신이 웃음을 잔뜩 머금고 대답했어요.

“아이스 카페모카 주세요, 두 잔이요!” 눈으로 웃으며, ‘두 잔’을 강조하기 위해 손가락 두 개를 활짝 펴고 주문하는 당신을 보니까

너무 많은 것이 묻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당신의 눈을 보니, 저 역시 대답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커피를 주문하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 꽤 긴 시간을 이야기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몰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겠다.

하지만, 보면 바로 아시겠지만, 너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라서

(유럽엔 카페모카가 없었어요, 오, 그럼 뭐 마셨는데요? 카푸치노요. 헐, 변심한 거? 무, 무슨 소리예요. 큭큭큭,
근데 우리 말 언제 놔요? 편하실 때 놓으셔요. 모카야! 헐! 큭큭큭)

적는 것이 너무 민망하다.

물론 이렇게 후기를 적는 것조차도 민망하다.

그래서 정말 간략하게 ‘저희 만났습니다!’ 라는 식의 내용만을 전달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건 기다리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또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분들 덕분이니,

성실하게 작성하고 감사 인사까지 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각자의 시선에서 작성하고, 함께 다듬었다.

원래는 각자 제보를 보내려고 했으나, 굳이 두 번이나 일을 하는 것 같아서 글을 합쳤다.

합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소설 같다.’ 라고 하신 게 생각나서 소설처럼 구성해보려고 노력했다.

적어놓고 보니 괜히 했나 싶다.

들쭉날쭉.

 

 

구성은 이렇지만, 각색된 내용은 한 군데도 없다.

정말 나는 기다린 지 3일 째였고, 그는 정말 많이 아팠다. 내가 기다리면서 읽으려고 들고 갔던 책은 <13계단>이었고, 그는 책을 보고 반색하며 집어 들다가 나에게 손톱을 들켰다.

그는 손톱을 숨기며 변명을 했고,

나는 다짐했듯이 그에게 내가 쓴 두 번째 답장을 직접 읽어주었다. 남들이 보면 웃는 건지 읽는 건지 모르겠지만.

길고 사소한 이야기를 읽어주신, 그리고 응원해주신

(특히 꼭 만나라고 느낌표 만땅으로 바라주신 분! 복받을 거예요 진짜!)

모든 분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드린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을 받으시길 바라겠다.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혼자 시작한 이야기는 겨울의 초입새에 이르러 이렇게 끝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름에 먼저 다가갔다면 이렇게 애태우고, 힘겹게 기다리지 않았을 텐데.

바보 같다 내가. 그래도 덕분에 지금은 함께 시작한 이 이야기가 더욱 소중하게, 애틋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추운 날씨 모두 아프지 않으셨으면, 모두 행복하셨으면 한다.

오늘따라 카페모카가 유난히 달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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