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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기사

세종문화회관..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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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앞에서도 배짱 두둑했던 건축가
 
건축가 엄덕문(1919~2012)

1978년 4월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불타버린 서울시민회관 터에 새로 공연장을 지었다.
 
대통령 박정희와 건축가 엄덕문이 직접 면담을 했다.
 
박은 북한을 이기기를 바랐다.
 
새로 짓는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 수천석이 들어간다니,
 
객석이 5천석을 넘기면 북한보다 폼이 날 것 같았다.
 
엄덕문은 반대. 무대를 더 넓게 짓는 쪽이 나았다.
 
박은 “기와를 얹어 보라”는 둥 “서까래를 내달라”는 둥 아이디어를 냈지만,
 
엄은 번번이 반대했다.
 
건축은 건축가에게 맡기라는 것.

딱 잘라 거절한 배짱도 대단하다.
 
문화인을 자처하던 당시 총리 김종필이 건축가 쪽에 힘을 실어줬다는
 
말이 있다.
 
건축을 시작하니 돈이 문제였다.
 
설계도 감리도 비용이 모자랐다.
 
엄덕문은 가진 땅을 팔아 모자란 인건비를 댔다.
 
건축을 위해 사재를 턴 셈.
 
이렇게 완성한 건물이 서울의 명소인 세종문화회관이다.
 
개관한 날짜는 1978년 4월14일.
 
북한 김일성 생일(4월15일) 전날로 잡았다는 뒷이야기.

하지권 찍다


5천석을 내라는 객석은 버티고 버텨 4200석만 냈다.
 
2004년 재개관 때는 객석을 3천석까지 줄였다.
 
그래도 엄덕문은 “아직 부족하다”며 아쉬워했단다.
 
2012년 아흔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세종문화회관 건축 당시 건축설계비는 고작 창고건물 설계 수준의 인건비만
 
책정돼 있어 적자를 보게 됐으나 엄덕문은자하문 밖 솔밭을 팔아 인건비로
 
충당하면서 최고의 건축이 되도록 건물을 완성시켰다.
 
설계비에 맞춰 대충 설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건축사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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